1950년 6·25전쟁을 피해 내려온 사람들이 누더기가 된 몸과 마음으로 부대끼던 부산. 그곳에서 천막 병원을 열고 가난한 이웃을 치료하며 평생을 바치겠다고 맹세했던 사람. 그리고 한국 최초의 의료보험조합인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만들어 함께 사는 길을 터 보려고 발버둥쳤던 사람. 그런 까닭에 우리나라 최고의 외과의사였음에도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 집 한 채 남기지 않고 빈손으로 떠나갔던 사람, 장기려.

'한국의 슈바이처' '바보 의사'로 알려진 장기려(1911~1995) 선생의 생애와 사상을 담은 평전이 출간됐다. 과거의 전기가 어린이용이거나 자서의 성격이 짙었으나 장기려, 그 사람은 인터뷰 전문가인 지강유철이 쓴 제대로 된 전기이자 평전이다.

이 책은 알려진 이력 외에 그의 인간적 면모를 부각시켰다. 저자는 장기려는 '이면과 표면의 경계를 허문 사람'이자 '교회 개혁을 열망했던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의료사고가 나면 경찰서에 달려가 과오를 인정할 정도로, 감출 것 없는 사람이었다. 구걸하러 온 거지와 겸상하고 입고 나간 코트를 벗어 주었으며 봉사를 하더라도 실력이 있어야 한다며 평생 공부에 열중했다. 바보 소리를 들을 정도로 다른 사람을 믿었지만, 김일성대학 재직 시절 자신이 크리스천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고 남한에서는 3선 개헌에 반대하고 전두환의 저녁 초대를 거절하는 배짱도 보였다.